[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손(Son) 부자의 꿈, 러시아에서 이뤄졌다.’

월드컵에서 결승골을 넣고 조국의 승리를 이끄는 꿈. 손흥민(26·토트넘) 뿐 아니라 그의 스승이자 아버지인 손웅정(54) 씨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마침내 ‘손 부자’의 꿈이 러시아 땅에서 이뤄졌다. 손흥민은 28일(한국시간) 러시아 카잔의 카잔 아레나에서 끝난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F조 최종전 독일과 경기에서 팀이 1-0으로 앞선 후반 추가시간 쐐기포에 성공했다. 멕시코와 2차전 만회골에 이어 대회 2호 골. 공격에 가담한 독일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의 공을 주세종이 빼앗아 하프라인을 넘어 달려가던 손흥민의 동선을 읽고 전방에 길게 찔러줬다. 손흥민은 질풍같은 속도로 달려들어 페널티 아크 왼쪽으로 흐른 공을 가볍게 왼발로 밀어넣었다. ‘디펜딩 챔프’ 독일의 추격 의지를 완전히 꺾는 골이었다.  

2014년 브라질 대회에서 월드컵 무대에 데뷔한 손흥민은 당시 조별리그 2차전 알제리전에서 첫 골을 터뜨렸다. 그러나 한국이 2-4 대패하면서 웃지 못했다. 이번 대회 멕시코전에서도 0-2로 뒤진 후반 추가 시간 환상적인 왼발 감아 차기 슛으로 만회골을 넣었지만 쓸쓸하게 하프라인으로 돌아서야 했다. 월드컵 통산 세 번째 골에서는 호쾌하게 그라운드를 질주하며 포효했다. 어릴 때 꿈을 키웠던 세계최강, 독일 대표팀과 경기에서 이룬 것이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이날 주장 완장을 찬 손흥민은 “더 높은 곳에 가고 싶었으나 후회 없는 경기를 했다. 한국은 더 잘 할 수 있는 팀”이라며 4년 뒤 카타르 대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포토] 손흥민, 비어있는 독일 골문에...추가골!

축구대표팀의 손흥민이 28일(한국 시간) 러시아 카잔의 카잔 아레나에서 진행된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독일과의 경기에서 1-0으로 앞선 후반 추가골을 성공시키고있다.카잔(러시아) |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포토] 손흥민, 독일전 승리의 기쁨!

손흥민의 V골은 축구 스승이자 아버지인 손웅정 씨도 현장에서 바라봤다. 손 씨는 대회 기간 러시아에 머물면서 언제나처럼 아들의 경기를 심도있게 챙겨봤다. “나와 흥민이는 1만 시간의 법칙을 믿는다. 언젠가 유럽 빅 리그에서 빛을 보고 월드컵에서 아들이 귀중한 골을 넣어 대표팀 승리를 이끌면 내 한이 풀리지 않을까.” 손 씨는 6년 전 강원도 춘천 공지천에서 손흥민의 프리시즌 훈련을 지도하면서 기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손 씨는 국가대표 출신이다. 1985년 상무 소속으로 K리그 7경기를 치른 뒤 현대(현 울산)와 일화(현 성남)를 거쳐 K리그에서 통산 37경기에 출전했고 7골을 넣었다. 키 167㎝ 단신이나 발재간이 좋았고 근성이 남달랐다. 1987년 태극마크도 달았다. 그러나 불의의 아킬레스건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그는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경기였는데 터치라인에서 공을 툭 차 놓고 달리다가 아킬레스건이 끊어졌다”고 떠올렸다. 결국 28세 이른 나이에 현역을 떠났다. 이후 삶은 힘겨웠다.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그러다가 유소년 축구와 인연을 맺었다. 그것도 일반 학교를 지도한 게 아니라 자신만의 프로그램으로 아카데미를 만들었다. 그곳엔 아들 손흥민 뿐 아니라 10명 안팎의 꿈나무가 있었다. 지금은 손(Son)축구아카데미로 거듭나 일부 선수들이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 진출했다. 기본기를 중시하는 그만의 프로그램은 축구계의 ‘야인’ 또는 ‘스라소니’로 불리던 그에 대한 평가를 단번에 뒤집었다. 그는 “흥민이와 연령별 대표를 같이한 다른 선수들을 보면 일찌감치 승부 세계에 노출돼 대부분 무릎이 고장나 있다. 학창 시절엔 무조건 기본기다. 난 흥민이가 고교생이 된 뒤에야 슛 훈련을 시켰다”고 돌이켰다.

손흥민이 이전 한국 축구 스타들과 다른 점은 학원 축구가 아닌 아버지에게 축구를 배운 점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다. 손흥민이 2010년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에서 프로로 데뷔해 만 18세3개월22일 나이에 데뷔골이자 구단 123년 역사상 최연소 골을 넣으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때, 이듬해 아시안컵을 통해 태극마크를 달았을 때, 한국 축구계는 그를 두고 혜성처럼 등장했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손 씨는 고개를 저었다. “흥민이는 하늘에 뚝 떨어지거나, 갑자기 만들어진 선수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웃라이어란 책에 ‘1만 시간의 법칙’이 나온다”며 “우리는 이것을 지켰다”고 했다. 명절에 친척 집 한 번 보낸 적이 없었다. 겨울엔 춘천 공지천 인조잔디가 얼어 인근 학교 운동장에 넉가래를 들고 가 눈을 치우고 땅을 갈며 공을 찼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훈련을 거르지 않았다. 더운 여름에도 아들은 나무 그늘에 세워놓고 아버지는 땡볕 아래서 수 백 개의 공을 던져주면서 운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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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기본기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고, 길들여진 정신력은 유럽 빅 리그에서 정상급 공격수로 우뚝서게 됐다. 그가 유럽에서 뽐낸 장점은 춘천 공지천에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흥민 존’으로 불리는 페널티박스 좌, 우 모서리에서 양발로 감아 차는 슛이 대표적이다. 독일 분데스리가 시절 시즌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쉬지 않고 아버지와 하루 1000개 이상의 슛을 연습했다. 손 씨는 “가제트 팔이 아닌 이상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감각을 익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대회 멕시코전에서 보란 듯이 ‘손흥민 존’에서 골을 터뜨렸다. 2016~2017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아시아 유럽파 한 시즌 최다골(21골)을 비롯해 사상 처음으로 ‘이달의 선수상’을 2차례 수상을 하는 등 전성기를 열었다. 월드컵 직전 시즌에도 모든 대회에서 18골로 활짝 웃었다. 오래 전 손 씨는 “진정한 월드클래스는 몸값 1000억은 돼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손흥민은 이미 국제스포츠연구센터(CIES) 등 유럽 5대 리그 선수를 평가하는 각종 기관으로부터 1000억원이 넘는 가치가 매겨졌다. 유럽에서 자리잡은 ‘손 부자’에게 남은 과제는 월드컵이었다. 침체에 빠진 대표팀 분위기에서 초반 2연패로 누구보다 속이 상했던 손흥민은 자신을 키운 독일을 상대로 꿈에 그리던 ‘V골’에 성공하면서 마침내 미소지었다. 이제 ‘손 부자’의 꿈은 4년 뒤 카타르로 향한다. V골을 넘어 16강 이상 목표를 향해 축구화 끈을 바짝 동여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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